생명체의 본능

자기의 흔적을 세상에 남기고 싶은 것은 생명체의 본능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오래 남았으면 할 것이다. 그래서 많은 동식물이 번식에 열을 올린다. 대표적으로 사슴, , 사자, 고릴라는 암컷 무리를 독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건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서로 싸우지 않더라도 평화적인 방식으로 경쟁하는 경우도 있다. 번식기에 노래 실력을 뽐내는 수컷 찌르레기나 화려한 꼬리털을 펼쳐 암컷을 유혹하는 공작새의 행위들은 모두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함이다. 최종적으로 암컷은 가장 우월한 수컷을 선택하여, 자기 유전자의 생존력을 높이는 쪽을 택한다. 식물 쪽도 치열하긴 매한가지이다. 꽃은 꿀과 향기로 벌과 나비를 유인해야 번식할 수 있고, 나무는 맛있는 열매를 만들어야 동물들에 의해 여기저기 씨앗을 퍼뜨릴 수 있다. 이렇듯 동·식물은 번식만이 자기의 흔적을 세상에 남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이를 위해 치열하고도 눈물겨운 사투를 벌이지만, 인간은 좀 다르다. 인간은 자식을 낳지 않아도 자기의 흔적을 세상에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더 효과적으로 말이다. 예를 들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이 바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흔적 남기기라고 볼 수 있다.

 

완전한 멸종

하지만 모든 글이 생명력을 가지고 있진 않다. 누군가의 글은 가치를 인정받는 반면에, 누군가의 글은 존재 여부도 모른 채 사라진다. 내 글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은 결국 흔적남기기에 실패했다는 것이며, 나의 완전한 멸종을 뜻한다. “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무슨 짓을 해도 사람들이 박수 쳐줄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은 바이올린 연주를 잘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의 연주 실력이 후대에 전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가 유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나는 확실히 일반인 중에서도 평범한 축에 속하기 때문에, 내 글이 유명해지기는 그른 것 같다. 아마도 나는 죽으면 아주 쉽게 멸종할 게 뻔하다.

 

내 신문사 국장 이야기

제목에 이끌려 읽기 시작한 독자들은 신문사 국장 이야기가 한 개도 없어서 의아했을 것이다. 기대했다면 죄송한 마음이다. 사실 정말로 할 얘기가 없다. 핑계를 좀 대자면, 필자는 부원들을 잘못 만났다. 부원들이 물의도 좀 일으키고 화끈하게 파벌싸움도 좀 하고 그래야 하지 않는가. 근데 쓸데없이 모두 맡은 일만 열심히 하고, 화목하게 지내니 원... 심지어 어떤 부원은 국장인 나보다도 열심히 일하는 바람에 눈치 보여서 혼났다. 누군가는 이런 부원들을 만난 내가 운이 좋은 국장인 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모두 알아서 잘하는 신문사에 내 존재가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누구로든 쉽게 대체될 수 있는 ’, 그래서 쉽게 잊힐 수밖에 없는 일 뿐이다.

 

자상한 담임선생님

그런데 생각해보면 어릴 적에는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기억해주지 않아도 개의치 않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우리 담임선생님은 일기장을 검사하시고 항상 내용에 대한 짧은 코멘트를 남겨주셨는데, 이 답장을 읽을 때면 일기를 쓴 시간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때로는 도장만 달랑 찍혀 있을 때도 있었는데, 그렇다고 내 인생이 휘청거리거나 무너지고 그러지는 않았다. 그냥 선생님이 바쁘신가 봐정도로만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왜 이렇게 남의 무심함에 휘청거리고 무너지는 건지 모르겠다. “내 인생이 세상에서 제일이야!”라고 당당하게 외치던 그때의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지금의 나는 분명 성장했어야 맞는 건데, 8살 때보다 마음이 더 쪼그라든 것일까. 슬프다. 내 옆에는 항상 자상한 담임선생님이 계셔야 하는 걸까. 누군가에게 기대여야만 하는 나 자신이 얄궂기만 하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한때는 연예인이 부러웠다. 솔직히 부러워서 미칠 뻔했다. ‘이들은 세상에 멋진 흔적을 남기고 가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도 방송에 안 나오거나 죽으면 서서히 잊히다가 사라지더라. ‘연예인도 별거 없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어쩌면 누군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그래야 새로운 사람들이 대신해서 빈자리를 채울 것이고, 그들이 또 한 번 세상을 굴려 나가지 않겠는가. 조금은 허무하긴 하지만 그래도 필자는 세상에 작은 스크래치 정도는 남기고 가고 싶다. 글로써 나 같은 사람도 세상에 있었다고, 보이진 않았어도 존재했었다고 살포시 흔적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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