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초여름, 나는 벼르고 벼르던 유럽문화 기행을 떠났다. 터키에서 시작해 불가리아, 루마니아, 헝가리, 체코, 오스트리아, 독일 등을 거쳐 북유럽을 둘러보고, 다시 베네룩스 3국, 프랑스 북부를 거쳐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살펴보는게 이번 여행의 주요 목표다. 지난 1996년 아내와 함께 신혼여행으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서유럽 주요 국가는 한 차례 배낭여행을 했으니, 이번에는 그 곳이 도리어 부차적 목적지가 된 것이다.

 터키는 유럽으로 들어서는 관문이다. 이스탄불은 도시 자체가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있다. 불가리아에 들어서니 제법 유럽 분위기가 풍겼다. 아기자기하면서도 고풍스 러운 멋이 있었다. 루마니아에 가니 이제 불가리아가 좀 촌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이르러서 비로소 진짜 유럽에 왔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도나우강 강가에 서 있는 집들은 서구식 비옷가봉이었고, 그 위에 놓인 다리들은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곳곳에 서 솟아오르는 분수는 음악에 맞춰 현란한 춤을 추었다. 하지만 체코 프라하에 도착하니 그것도 무색해졌다.

▲ 매달린 지그문트 프로이트 동상
▲ 매달린 지그문트 프로이트 동상

 

 터널을 빠져나오니 검붉은 지붕이 세상을 덮었다. 유럽의 지붕은 대체로 붉은색이 지만 다 같지는 않다. 프라하의 지붕은 유난히 짙다. 벽색도 산뜻한 파스텔 색조보다는 칙칙한 회색조가 지배적이다. 건물을 장식 하고 있는 조각들도 대체로 음산하다. 프라하의 풍경은 뭔지 모르게 웅숭깊은 인간의 어두운 측면을 드러내는 듯한데, 바로 그러한 지붕과 벽 그리고 조각 장식들이 그러한 분위기를 자아내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보헤미안의 운명을 대변하는 것일까.

 프라하에는 볼거리가 너무 많아 대표하는 유적 하나를 꼽기 어렵지만 그래도 프라 하성, 그 성안에 자리하고 있는 성 비투스 대성당이 제일이다.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 어 운치 있는 그 어두운 그림자의 세계는 그 자체로 자못 성스러움을 자아낸다. 성당 안 팎의 화려한 장식은 무겁게 마음을 압도해서 외경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비투스 성 당은 프라하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여 도시 어디서나 보인다. 마치 그것은 그렇게 도시의 정신을 일깨우고 있는 듯했다.

 높은 곳에 비투스 성당이 있다면 낮은 곳에 구시가 광장이 있다. 광장 한가운데는 루 터보다 100년 앞서 종교개혁 운동을 하다가 순교한 얀 후세 기념비가 크로테스크한 멋을 풍기며 장엄히 서 있다. 마치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지키라’고 말하는 얀 후세의 굵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 리는 듯하다. 그 주위에는 천문시계탑이나 틴 성모 교회, 성 니콜라스 교회 등 오래된 건물들이 늘어서 있어 여행객들의 마음을 압도한다. 

 프라하성과 구시가 광장 사이에 프라하 의 명물인 카를교가 있다. 카를교는 600여 년을 블타바강 위에 서서 세계 여행객의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다리다. 카를교는 그냥 다리라기보다 세계 시민들의 문화 공간 이다. 다리 양쪽에 30여 개의 조각상이 위엄스러운 모습으로 서 있고, 여러 초상화가가 오가는 시민들의 얼굴을 그려주고 있으며,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음악가들이 흥겨운 연주를 하고, 그에 맞춰 춤을 추는 시민들도 있다. 다리 위는 언제나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여행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밝다.

▲ 존 레넌 벽
▲ 존 레넌 벽

 

 기대를 품고 찾아간 카프카의 박물관이나 기념비는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다. 헌데 프라하에서 유난히 내 관심을 끈게 두 가지 있다. 그 하나는 ‘매달린 지그문트 프로이트 동상’이고, 다른 하나는 ‘레넌 벽’이다. 구시가 광장을 빠져나와 골목으로 들어서면 약 20미터쯤 높이에 프로이트 동상이 매달려 있다. 행인들은 신기한 듯 올려다보며 웃으며 사진을 찍는다. 공중에 매달린 프로이트 는 한 손으로 아슬아슬하게 봉을 잡고 있지만, 가만히 보면 그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으며 여유롭게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있다. 멋지고도 정확하게 프로이트를 표현하지 않았는가! 세상에서 그의 이론은 공중에 매달린 것처럼 위태로운 것이었 다. 처음에는 말할 것도 없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허나 프로이트 자신은 이런 세상의 평판에 아랑곳없이 자신의 연구를 심화시켜 나갔다. 여유 있는 마음으로 아슬아슬하게 세상을 굽어보며……. 그의 이론은 많은 반론을 받아 왔고 부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현대 심리학의 기초가 되며 무한한 학문적 암시를 담고 있다. 마치 뉴턴이나 다윈이 그러한 것처럼.

 ‘존 레넌 벽’은 카를교 넘어 골목에 있다. ‘존 레넌 벽’은 존 레넌이 암살당한 1980년 프라하의 봄과 맞물려, 존 레넌의 얼굴과 더불어 자유와 평등의 노래 ‘이매진’을 벽화 로 만든 것이다. ‘존 레넌 벽’에 도착하니 많지 않은 젊은이들이 벽 앞에 서서 벽화를 보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헌데 벽에는 많은 그라피티가 수놓고 있었지만, 정작 존 레넌 의 얼굴이 있어야 할 중앙 원에 존 레넌은 없었다. 온통 다른 낙서들과 스티커들로 존 레넌의 얼굴이 가려져 버린 것이었다. 존 레 넌 벽에 존 레넌은 없었다. ‘허허, 이게 웬일 인가?’ 나는 잠시 아연했다. 헌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은 도리어 존 레넌의 정신을 살리는 길이었다. 그의 얼굴을 덮은 낙서나 스티커가 다름 아닌 자유와 평등에 대한 염원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존 레넌의 얼굴이 가려지고 존 레넌의 정신이 드러났다.

 프라하는 다소 혼돈스러운 도시다. 어두운 그림자에서 성스러움이 우러나고, 그 성 스러움 곁에 자유분방한 정신이 살아있다. 그것은 발랄하면서도 애조를 띠고 있다. 아이러니한 매력, 그것이 보헤미안의 정신인 지 모르겠다.

 

이 승 준(인문자연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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