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은 각각 자국 내 수감자 5명씩 맞교환하는 협상을 타결하면서, 한국 내 동결된 이란 자금을 풀어주는 방안에 합의했다. 파르진 중앙은행장에 따르면 한국에 동결되어 있던 이란의 자금은 무려 70억 달러 (93,240억 원)이다. 이란의 석유 판매 대금에 대한 동결 조치가 4년 만에 해제됨에 따라 수년간 갈등 국면을 이어온 한국과 이란의 관계도 빠르게 회복될지 주목된다.

자금 동결의 이유는?

 중동 산유국 이란은 2010년부터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에 이란중앙은행 명의로 원화 계좌를 개설하고, 한국에 대한 석유 판매 대금을 받고 한국으로부터의 수입대금을 지불했다. 그러나 미국 트럼프 정부가 2018년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일방적으로 탈퇴한 이후, 대이란 제재 복원의 일환으로 이란중앙은행을 제재 명단에 올리면서 이 계좌가 20195월 동결됐다. 한국에서 동결된 이란 석유 결제 대금 문제는 2021년 시작된 핵 합의 복원 협상과 얽히면서 양국 관계에 커다란 악재로 작용했다. 이란은 동결 자금 문제로 우리 정부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해 왔다. 한국이 미국의 대이란 제재만 따를 뿐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 이란의 주장이었다. 핵 합의 복원 회담이 시작된 2021년 이란 지도층은 동결 자금을 문제 삼으며 한국을 향한 날 선 발언을 쏟아냈다. 호세인 아미르압둘라히안 외무장관은 한국 내 동결자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란에서의 한국 드라마 방영을 중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란 최고지도자는 동결 자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한국 기업이 생산한 가전제품에 대해 수입 금지 조처를 내리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심지어 20211월에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인근 해역을 항행하던 한국케미호와 선원을 나포했다가 약 석 달 만에 풀어줬는데 당시 원화 자금에 대한 불만이 주된 이유라는 분석이 나왔다.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자금

 미 백악관은 이번 이란 자금 동결 해제 조치는 한국 정부와도 공조한 결과라며 해당 자금은 군사적 전용 가능성이 없는 분야에만 사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란 정부와 중앙은행은 획득한 자금을 미국과의 협의에 따라 식량과 의약품 등 비제재 물품 구매용으로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외신들은 이번 협상이 이란 핵 개발 문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란이 우라늄 농축 속도를 전반적으로 늦췄고, 이미 핵폭탄으로 사용할 수 있는 60% 이상 농축된 우라늄도 희석 작업을 통해 농도를 낮추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아직 미국 정치권에서는 제재 해제를 두고 공방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마이클 매콜 미국 하원 외교의원장은 "이란 동결자금 해제는 테러 작전과 핵폭탄 우려를 지탱할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부 장관도 "(해제 조치가) 이스라엘이나 걸프 해역 국가들에 위험하다"고 말했다.

한국 내 이란 동결자금 이체 과정 (출처: 연합뉴스)
한국 내 이란 동결자금 이체 과정 (출처: 연합뉴스)

 

다시 열린 이란 가전시장... 예의주시하는 국내 가전 기업

 닫혔던 이란 가전시장이 다시 열린다. 중동 지역 최대 규모의 시장을 갖춘 이란이 내수 경기 활성화에 나서면서 현지 선호도가 높은 한국 가전이 반사이익을 볼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의 핵심 역할을 해 온 것에 반발한 이란은 2021년 한국산 가전제품의 수입을 금지하면서 삼성전자·LG전자 등의 이란 판매로가 막혔다. 업계 관계자는 "(자금 동결 이후) 국내 가전 기업은 사실상 이란 시장에서 철수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결 자금 해제로 공식 판매로가 다시 열리면 실적 개선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 가전은 현지에서 '명품' 대접받는다. 봉쇄조치 이전 삼성·LG 가전제품의 현지 점유율은 70%를 웃돌기도 했다. ''(SAM)이나 '지플러스'(Gplus) 등 이란의 현지 기업은 한국 기업에 비해 선호도가 낮다. 심지어 봉쇄 이후에도 꾸준히 한국 가전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많았다. 이란 가전산업협회는 현지 가전시장 규모 60억달러(한화 약 8조원) 40%에 달하는 25억달러(33000억원)를 밀수 제품으로 추산한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삼성전자와 LG전자 가전제품의 수입을 금지하면서 "한국 가전제품이 국내 가전제품을 망치고 있다"고 언급할 정도다. 하지만 아직 국내 업계는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언제든 미국과의 관계가 다시 악화할 수 있고, 미수금 문제가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고동근 기자 rhehdrms2003@ka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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