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미크로네시아 축 제도인 남태평양의 ‘트럭 섬’ 주변 바다에 방치되어 있던 태평양 전쟁 당시 전몰자 유골을 수습하기 위해 일본 정부 측에서 조사를 시작했다. 전쟁 당시 트럭 섬에 대거 동원되었었던 조선인들의 유골도 발견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태평양 전쟁

  태평양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역 중 하나로 태평양과 동아시아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태평양 전선 개전은 1941년 12월 7일 일본 제국의 해군이 하와이 진주만에 위치한 미 해군 태평양함대 기지를 기습 공격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일본군은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 일대를 남방 작전을 통해 석권하고 인도, 호주까지 위협하였다. 주로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에서 벌어졌으며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태평양 전쟁은 육상전이 주가 되었던 유럽 전선과 달리 태평양 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해전과 상륙전이 주를 이뤘다. 특히 태평양의 여러 섬들을 배경으로 한 전선인 만큼 해전의 비중이 컸다.

트럭 섬

  태평양 전쟁이 진행 중일 때 남태평양 트럭 섬에는 일본 해군 함대 기지가 있었고 1944년 2월 17~18일 미 항모 부대의 공격으로 40여 척의 일본 함선이 격침된 바 있다. 현재 트럭 섬의 공식 명칭은 ‘축 제도’로 미 크로네시아 연방을 구성하는 4개 주 가운데 하나의 섬이다. 트럭 섬은 태평양 남서쪽에 위치하여 얍과 코스라에, 폰페이와 함께 미크로네시아연방을 이루고 일본인들은 이 섬을 ‘트루크 제도’라고 불렀는데 일본식 발음을 접했던 한국인들이 일반적으로 ‘트럭’ 이라는 호칭을 붙여 불러왔다.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당시 많은 조선인들이 기지건설 등을 위해 강제로 동원됐었던 아픈 역사가 서려 있는 장소이다.

 

  2017년 서울시가 미국 공식 문서와 기사 등을 분석하여 故 이복순 할머니의 사진과 문서를 발견하며 처음으로 조선인 위안부 26명이 트럭 섬에 있었던 사실을 확인하였다. 과거에는 증언만으로 존재하여 실제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해당 자료로 인하여 실재 존재하였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연구팀이 미국 국립문서기록 관리청에서 찾은 미군 전투 일지에 따르면 당시 트럭 섬에서 귀환한 1만 4,298 명 중 조선인은 3,483명이었다. 이 중 일부 는 이키노호를 타고 일본을 거쳐 조선으로 귀환했음을 명단을 통해 알아볼 수 있었다. 이처럼 트럭 섬의 유골 발견이 다시 한국 사회의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트럭 섬에 조선인이 강제 동원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트럭섬 인근 해협 조사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지난 23일 일본 후생노동성은 최근 트럭 섬 주변 바다를 조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조사는 21일부터 24일까지 총 4일간 진행되며 태평양 전쟁 중 격침된 일본 함선에서 유골을 수습할 목적으로 진행된다. 22일엔 수심 38m 해저에 가라앉은 급유선인 ‘신 코쿠 마루’ 선내에 잠수사들이 투입되어 선실과 철골 사이에 있는 유해를 확인했으며 조만간 인양할 예정에 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은 민군을 합쳐 외국에서 약 24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수습된 유골은 112만 구에 달하고, 약 30만 구의 유골이 바닷 속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 정부에 서는 외국바다에 있는 유골을 ‘수장’된 것으로 취급하며 그동안 수습하지 않고 있었으며 1994년 일본 국회에서는 “바다 자체가 전몰자의 영면 장소라는 인식도 있어 원칙적으로 수습은 하지 않는다.”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었다. 하지만 최근 다이버들이 바다에서 전몰자 유골을 촬영해 인터넷에 업로드 한 사진이 확산되면서 일본의 지침에 변화가 생겼다. 2016년 ‘전몰자 유골 수집 추진 법안’이 일본 국회를 통과해 유골 수습 이일본 정부의 책임이 되었으며 이후 후생 노동성도 본격적으로 바닷속 유골 수습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트럭섬 주변 해역에서 유골 수습이 이뤄지는 만큼, 귀환하지 못한 조선인 희생자 유골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지난 2015년 9월에도 홋카이도로 끌려가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희생되었던 조선인 유골 115위가 한국에 입국해 서울 시립 추모공원에 안치되었었다. 이번에도 미처 귀환하지 못한 조선인의 유골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길 바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권수민 기자 s00m1n@kau.kr

저작권자 © 항공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