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대학생들 중에 김민기를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7080세대에게 ‘김민기’라는 이름 석자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젊은 시절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사람 마다 조금씩 다를 수는 있지만, ‘김민기’에는 떨림이 있고, 서러움이 있고, 울림이 있으며 또한 그리움이 있다. 거기에 는 어두운 현실에 대한 고뇌와, 부당한 세력에 대한 저항과, 역사 변화를 목도하며 느끼는 벅찬 감격과, 새 시대에 대한 희망찬 기대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김민기’는 몰라도, ‘아침이슬’을 한 번쯤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 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하고 시작하는 노래, ‘아침이슬’을 만든 사람이 바로 김민기다. 김민기는 1971년 첫 노래 모음집 ‘김민기’에 이 곡을 실었다. ‘김민기’ 앨범이 나오기 약 2개월 전, 양희은이 ‘아침이슬’을 그녀의 첫 앨범에 실었 고 이후 그녀에 의해 불려, 대개 양희은의 목소리로 듣는 ‘아침이슬’이 더 익숙할 것이다. 올해로 ‘아침이슬’이 세상에 나 온 지 쉰 해가 된다.

 지난 50년 동안, 김민기와 더불어 ‘아침이슬’은 질곡의 운명을 살아내야 했다. 1972년 서울대 문과대 신입생 환영회에서 김민기가 신입생들에게 ‘불온한’ 노래들을 가르쳤다 하여, 그의 첫 앨범 ‘김민기’는 전량 수거 폐기된다. 이때부 터 ‘김민기’라는 이름은 ‘위반’으로 각인된다. 이후 양희은이 부르는 ‘아침이슬’만 들을 수 있었고, 김민기가 작곡한 많은 노래는 양희은이 부른다. ‘작은 연못’, ‘상록수(거칠은 들판 에 푸르른 솔잎처럼)’,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늙은 군인의 노래’ 등의 주옥같은 명곡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1975년 박정희가 유신정권을 획책하는 과정에서 ‘아침이슬’은 아무런 이유 없이 금지곡으로 지정되고, 김민기의 모든 사회적 활동이 금지된다. 이에 따라 ‘김민기’와 관련된 모든 것은 ‘금기’가 된다. 하지만 온 국민이 군화발 아래 신음 하던 어두운 시절, ‘김민기’는 그늘의 전설이요, 신화가 된다. 그의 노래들는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불법 테이프로 제작 되어 유포된다. 하여 그것은, 귀 밝은 젊은이들이 웅숭깊은 골방에 숨어서 은밀히 들으며 시대에 대한 울분을 달래기 도 하고, 또한 시대의 어둠을 몰아내는 거대한 힘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아침이슬’은 우리 현대사의 극적인 순간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배경음악이었다. 유신시대에 음지에서 유령 처럼 떠돌던 이 노래가, 박정희가 저격되고 전두환의 신군 부정권이 들어서던 1980년 5월에 민주화의 기대와 좌절속 에서 울려퍼졌고, 전두환 정권이 무릎 꿇은 1987년 6.10항 쟁 때 광화문 네거리를 비롯한 한반도 곳곳에서 함성으로 터졌으며,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린 촛불혁명의 현장에서 남녀노소 온 국민을 한 목소리 한 마음으로 엮어주었다. 고통 의 눈물이던 ‘아침이슬’은, 이제 환희의 눈물로 우리 시대 저 항문화의 한 상징이 된다. 김민기의 노래 ‘친구’의 가사처럼, 진지하고 속깊은 한 젊은이의 ‘아니다’라는 낮지만 강한 외 침에 세상 사람들이 또한 뜨거운 가슴으로 호응한 결과다.

 김민기의 ‘아침이슬’ 50주년을 기념하는 열기가 뜨겁다. 지난 6월 ‘예술의 전당’에서 《김민기, 아침이슬 50년》 전시회가 열렸다. 여기에 김민기에 대한 자료와 그를 기리는 우리 시대 중견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대거 전시되었다. 또 한 지난 6월 20일 KBS는 ‘아침이슬 50주년 트리뷰트’, 열린 음악회 김민기 특집 방송을 내보냈다. 여기에는 한영애, 장필순, 이은미, 박학기 등 그야말로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참 여했다. 최근 여기에 정태춘, 나윤선 등도 가세하여, 《‘아침 이슬’ 50년, 김민기에 헌정하다》라는 헌정앨범을 제작 발표했다. 9월 22일에는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김민기 트리뷰트’ 콘서트가 열리기도 했다. 이 앨범과 공연은 가수 한영애가 주도했는데, “김민기 선배에게 빚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 김민기의 첫 노래모음집, ‘김민기’(1971, 왼쪽), ‘아침이슬 50년, 김민기에게 헌정하다’(2021, 오른쪽)

 지난 며칠간 김민기 전집 음반과 헌정앨범을 음미하며 김민기에 대한 다양한 글을 읽었다. 그러고보니 김민기에게 ‘빚진 사람’은, 그에게 영향을 받은 후배 가수들만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 나는 ‘아침이슬’을 듣고 기타치며 노래 불렀다. 그때 내게 ‘김민기’는 그저 풍문이었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그의 여러 곡을 들으면서, 그리고 사회에 대해 뭘 좀 알게 되면서, 내게 그의 노래는 사회와 역사를 읽는 교사였다. 헌데 지금 나는 김민기의 그 깊은 인간다움에 감동한다. 그는 그의 목소리처럼 한없이 낮지만 그만큼 깊다. 그것은 고스 란히 그의 노래에 담겨 있다. 김민기 노래를 들으면 내 자신 이 부끄러워진다. 하여 ‘아침이슬’에게서 ‘작은 미소’를 배우 듯이, 부끄러워하며 배우고 깨닫는다. 그러니 나도 김민기 와 ‘아침이슬’에 빚졌다. ‘비졌다’기보다, 그냥 고마울 따름이다. “고마워요, 김민기 선생님!”

저작권자 © 항공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