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반,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음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당시의 청소년들이 그랬듯이 나도 그때 유행하던 팝송을 즐겨 들었다. 그러다가 비틀즈라는 이름을 알게 되어, 레코드점에 가서 비틀즈의 'Let It Be' LP를 샀다. 집에 돌아와 기대에 차서 음반에 바늘을 올려놓았다. 하지만 대실망이었다. 한마디로 그것은 너무나 평범했다. 비지스의 간드러진 가성 보컬이나 아바의 흥겨운 멜로디, 퀸의 현란한 록비트를 즐기던 내 귀에 'Let it be'는 시시하게 들렸다. 나는 이 음반을 한쪽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 1년쯤 지난 어느 날, 문득 비틀즈의 'Let It Be'가 생각나서, 무심코 꺼내어 턴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내게 무언가 깊게 호소하고 있었다. 그 사이 내 귀가 그만큼 열린 것일까?

'Let It Be'(1970)

'Let It Be'는 다채로운 명곡들이 조화로운 세계를 이루고 있는 명반이다. ‘One After 909’와 같은 록큰롤 풍의 곡에서부터 ‘I've Got A Feeling’, ‘Get Back’ 같이, 완성도 높은 록음악도 실려 있다. ‘For You Blue’는 존 레논의 슬라이드 주법 독특한 매력을 발하는 곡이다. ‘I Me Mine’은 현대인의 자아에 대한 성찰이 담긴 조지 해리슨의 최고작이다. 나는 이 곡이 그의 대표작 ‘Something’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이 앨범에 실린 곡들은 모두 최고다. 곳곳에서 빛을 발하는 빌리 프레스톤의 피아노 세션 연주도 일품이다. 하지만 특히 내가 좋아하는 곡은 ‘Across The Universe’와 ‘Let It Be’다. 두 곡 모두 가사와 연주가 상식을 뛰어넘는 깊이를 지닌 작품이다. ‘The Long And Winding Road’는 그 훌륭한 선율과 가사에도 불구하고, 좀 아쉬움이 남는 곡인데, 지나치게 화려한 오케스트라가 나를 질리게 만든다. 나중에 알고 보니 폴 매카트니 역시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Let It Be'는 불협화음 속에서 오랜 진통 끝에 탄생하였다. 1969년 1월 팀의 화합을 위해 폴 매카트니가 구상한 ‘Get Back 프로젝트’가 추진된다. 새로운 곡을 라이브로 발표하고, 실황 음반 만드는 과정을 TV용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자는 계획이다. 1969년 1월 촬영이 시작됐지만 곧 팀 내 불화는 다시 불거졌고, 그것은 그대로 카메라에 잡혔다. 그 와중에도 ‘I Me Mine’과 같은 명곡을 만들어 냈지만, 결국 이 프로젝트는 곧 무산되고 만다. 'Get Back' 앨범을 발매하려 했지만, 폴의 반대로 발매는 보류된다. 1970년 5월 보류되었던 앨범 'Get Back'이 'Let It Be'라는 이름으로 발매된다. 팀의 불화로 서로 얼굴도 마주하지 않던 멤버들은 각자 자기 파트를 녹음했다. 이것을 믹싱해서 앨범을 완성했다. 그것은 프로듀서 필 스펙터의 몫이었다. 이 앨범이 출시되었을 때 비틀즈는 이미 해체되었다. 이 앨범은 비틀즈의 마지막 앨범이다.

이 음반의 원래 기획의도는 ‘기본으로 돌아가자(Back to basic)’는 데 있었다. 비틀즈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The Beatles' 등에서 오버더빙과 멀티 레코딩을 통해 찬란한 음향의 실험을 감행했다. 이제 ‘음향’의 실험이 아닌 ‘음악’으로 돌아오자는 의미에서 스튜디오 라이브를 시도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처음에 ‘Get Back’을 내세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앨범은 결과적으로 오버더빙 앨범이 되고 말았다. 필 스펙터는 오버더빙을 하지 않기로 한 규칙을 어기고, 화려한 오케스트라 편곡을 첨가했다. 폴 매카트니는 필 스펙터의 편집에 불만을 나타냈고, 특히 그 불만은 ‘The Long and Winding Road’에 대해 가장 심했다. 폴은 이 곡이 발매되는 것을 저지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필 스펙터의 뛰어난 능력이 아니었다면 이 앨범은 만들어질 수 없었지만, 그의 작업에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하여 폴 매카트니 주도 하에 2003년 'Let It Be...Naked' 앨범을 제작된다.

'Let It Be...Naked'(2003)

2002년 2월 폴 매카트니는,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에 참가했던 마이클 린제이 호그를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나, 당시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변형된 이 앨범을 원래대로 되돌리자는 데 합의하게 된다. 2003년 11월 󰡔Let It Be󰡕의 세션 녹음테이프를 모아 편집하여 'Let It Be...Naked'를 발매한다. 이 음반은 과잉된 장식을 거두어내서 본래의 순수한 록음악으로 재탄생되었다. 특히 폴의 본래 의도대로, ‘The Long and Winding Road’는 화려한 오케스트라 연주를 벗겨내고 피아노 반주를 삽입하여 담백한 발라드 록으로 바뀌었다. 원래 의도를 살려 곡의 순서도 재배치하고, ‘Don't Let Me Down’을 첨가했다. 상징적인 의미에서 앨범의 표지도 음화 사진으로 실었다. 또 하나의 󰡔Let It Be󰡕 앨범이 탄생한 것이다. 이 앨범이 의미 잇는 앨범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기존 앨범의 가치가 위축되는 것은 아니다. 이 앨범이 내 손에 들어왔을 때, 나는 새로운 친구를 얻은 기분이다.

'Let It Be'를 ‘진짜로’ 듣게 된 날 나는 비틀즈 음악이 내 인생의 벗이 되어줄 것이라는 예감을 갖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후 나에게는 명반을 구입하면 묵혀두는 습관이 생겼다. 고급 음악일수록 어려운 친구를 사귀듯이 친해질 때까지 조금씩 다가간다. 빨리 친해졌다고 반드시 금방 싫증나는 것은 아니지만, 친해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음악과는 그만큼 더 깊이 사귀게 되는 수가 있다. 내게 인생을 동반하는 너무 많은 음악의 벗들이 생겨났지만, 여전히 가장 친한 벗을 꼽으라면, 나는 비틀즈의 'Let it be'를 꼽는다. 청소년기에 그랬듯이 지금도 ‘Across The Universe’를 들으면 나의 정신은 신을 찾아서 우주의 끝을 향하고, 그 후렴구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를 외치며 나의 세계를 일구는 힘을 얻는다. ‘Let it be’를 따라 부르며 신과 자연의 섭리를 되새기고, 그러면서 마음의 평온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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