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국수를 겨울에도 먹게 해주세요,’ ‘고장난 변기를 고쳐주세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청원글이 30만 건에 다다른 가운데, 온갖 유형의 장난성 게시글이 게시판의 원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 대나무숲’과 같은 조롱 섞인 비판 또한 제기되는 상황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의 현 시스템 상 문제는 무엇이며 나아가야 할 방향성은 무엇일까.

 

청와대 국민청원, 원래 의도는

 청와대는 지난해 8월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홈페이지를 개편했다. 이에 따라 신설된 게시판 중 하나가 ‘국민청원 및 제안’이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강조했던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실현하기 위해 이러한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30일 동안 20만 명 이상의 국민들이 공감한 ‘청원’에 대해선 각 부처 장관, 대통령 수석 비서관, 특별 보좌관 등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가 직접 답을 한다. 지금까지 총 49개의 청원이 20만 명 이상의 공감을 얻어 정부의 답변을 받았으며, 현재 2개의 청원은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시스템이 국민들에게는 공론의 장으로, 청와대에는 여론수렴의 공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자유게시판?

 그러나 누구든 자유롭게 게시판에 글을 올릴 수 있다 보니 청원 게시판 성격에 맞지 않거나 청와대를 답변 주체로 보기 어려운 청원도 많다. “커플들에게 데이트 비용을 지원해 달라”거나 “걸그룹이 재결합할 수 있게 도와 달라”는 등 게시판의 원 취지에서 벗어난 내용의 청원이 올라오는 것이다. 이처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무분별한 청원이 올라오며 본래 의도가 훼손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일부 누리꾼들은 청원자들의 이 같은 민원성 글들이 불편하다고 지적한다. 직장인 오모(52)씨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아닌 ‘국민 신문고’라는 제도도 존재한다.”며 “왜 굳이 정책 개선을 요구하는 청원 게시판에 개인적인 내용을 올리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또 “장난성 청원으로 인해 정작 중요한 청원이 묻힐 수 있다.”라며 우려하기도 했다.

 여론을 유리한 쪽으로 이끌기 위한 장(場)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 또한 나온다. 다수가 공감한 사안에 청와대가 직접 답해주겠다는 취지이나, 청원에 특정 이해집단의 목소리만 반영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20만 명의 기준이 여론을 능숙하게 결집시키는 집단에만 유리할 뿐 개인이나 소수의 목소리를 반영하긴 어렵다고 지적한다. 사법부가 판결을 끝낸 사안에 대해 청와대에 재차 호소하는 사례 또한 늘어나 ‘삼권분립’을 해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개별 사건마다 국민청원이 있다고 이를 모두 법원에 전달하면 법원은 여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며 “법부 독립은 엄정하게 보장되어야 하고, 이를 조금이라도 훼손할 우려가 있는 일은 엄격하게 금지돼야 한다.”고 밝혔다.

 

긍정적 효과도 잊지 말아야

 이렇듯 청와대 국민청원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시선도 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청원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성인남녀 3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3.7%가 ‘청와대 국민청원 제도를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32%가 ‘청와대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을 꼽았다. ‘의견표출이 힘든 사회적 약자들이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라는 답변이 25.1%로 그 뒤를 이었고, ‘건전한 청원 문화 조성에 도움이 된다’는 답변도 존재했다. 실제로 지난 5월 청와대 국민청원에 K-9 자주포 폭발사고로 다친 이찬호 예비역 병장에 대한 보상 제공 및 국가유공자 지정을 청원하는 글이 올라왔다. 이는 순식간에 28만 명의 지지를 얻었다. 이후 국방부는 치료비 전액과 간병비, 위로금을 지원했으며 국가보훈처는 이 병장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했다. 잊힐 수도 있던 한 개인의 이야기가 국민청원 시스템을 통해 전 국민적 공감을 얻어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앞으로는

 이렇듯 국민청원의 순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김원섭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청원 중에는 자극적인 내용이 많아 청원 게시판의 취지를 흐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청와대는 20만 명 이상이 동의한 청원에 대해서만 답변하겠다는 기준을 뒀지만 전체 청원에 대해 내용을 모니터링하거나 기준을 두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원 게시판을 청원에 답변하기 위한 곳으로만 활용하는 것이 아닌, 정부의 정책기조나 방향을 국민에게 알리는 자리로도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같은 매체에서 “민주주의에서 이익집단의 활성화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며 “청원 게시판이 입법단계 이전의 의제설정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과 정부 간의 소통 창구가 되고 직접민주주의 실현의 장이 된 청와대 국민청원. 본래 취지를 헤치지 않기 위해선 정부와 국민 모두의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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