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7일(현지시각)에 시작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의 무력 충돌이 전쟁으로 확전됨에 따라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나고르노-카르바흐 지역에 위치한 아르차흐 공화국이 그 원인이 되었으며,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1988년부터 1994년까지 이 지역으로 인해 전쟁이 일어난 과거가 있을 정도로 두 국가 간의 갈등이 유서 깊은 곳이다. 아르차흐 공화국의 대통령이 직접 전선에 뛰어들 정도로 전쟁이 과열됨에 따라 프랑스와 러시아, 터키 등 다른 국가들의 개입이 우려되고 있다.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 (출처 : 뉴스타운)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유서 깊은 갈등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20세기 소련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18년 러시아 제국의 몰락에 따라 적백 내전이 일어나며 코카서스 산맥에 위치한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3국은 독립을 선포하였고 이들은 그해 4월 연합하여 자캅카스 민주 공화국을 구성하였다. 이는 오스만 제국의 침공, 볼셰비키와 아르메니아 혁명 연맹 주도의 3월 학살에 대한 의견 차이로 1달 만에 조지아가 독립을 선언함으로써 1달 만에 해체되었다. 그러나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1920년, 조지아가 1921년 붉은 군대에 점령됨에 따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정부가 성립되었고, 레닌은 1922년 이들을 합쳐 자캅카스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을 부활시켰다. 그해 서기장으로 취임한 이오시프 스탈린은 1923년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 공화국을 설립시켜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귀속시켜 주었고 이로 인해 두 국가 간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스탈린의 행동은 아제르바이잔에 우호의 신호를 보이기 위함과 터키 공화국 치하의 아르메니아인 거주지를 수복하고자 했던 매우 강경한 아르메니아 민족주의 세력을 약화하기 위한 행동이였다. 동시에 이는 오스만 제국이 1차 대전에서 패배한 후 그 자리를 대체한, 아제르바이잔과 같은 민족에 해당하는 신생 터키 공화국에 대한 우호적 표현이기도 하였다. 1991년 소련을 유지하기 위한 소련 공산당 보수파의 8월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감에 따라 소련 중앙 정부의 귀속력은 매우 낮아졌으며, 이 때를 틈타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 공화국은 아르메니아로의 귀속 동의를 천명하였다. 이로 인해 아제르바이잔의 대도시 숨가이으트에서는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이 일어났으며, 1년 후 소련이 해체되자 두 국가 간에는 이 지역을 두고 전쟁을 벌인다. 아제르바이잔은 터키의 지원, 보유한 인구와 유효 병력의 2배 등 아르메니아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었지만 미국과 러시아, 이란의 아르메니아 지원과 전투적 경험 미보유로 인해 아르메니아에 패배하였다. 그 후 아르메니아의 주도 아래 아르차흐 공화국이 미승인국으로 이 지역에 설립되어 사실상 아르메니아의 영토로 간주되며 현재까지 내려져 오고 있다.

 
 이번 전쟁에서 터키가 아제르바이잔의 편에 개입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터키와 아제르바이잔이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터키와 아르메니아 간의 또다른 유서 깊은 갈등 때문이다. 터키가 오스만 제국이었던 1915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 제국과의 전쟁에서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입대하여 싸우라고 요구했다. 이 정보를 입수한 러시아 제국은 러시아령 아르메니아인들과 연합하여 오스만 제국 내 아르메니아인들에게 반란을 일으킬 것을 요청했다. 이들은 시바스라는 도시에서 터키인 5천 명을 학살했고, 이로 인해 오스만 제국은 200만 명에 이르는 아르메니아 인들을 멀리 있는 헤자즈로 강제 이주시켰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은 예전부터 유럽의 병자라고 불리고 있었으며, 세계대전으로 더더욱 바닥난 재정 상태로 인해 이들을 먹이거나 기차에 태워 보낼 수도 없었다. 강제 이주될 지역인 헤자즈는 이미 영국의 사주를 받은 아랍 반군들로 전쟁터였으며, 질병, 아사, 강탈 등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1915년 한 해에만 현재 아르메니아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150만 명~200만 명에 해당한다고 아르메니아는 주장한다.


 나고르노-카르바흐 지역 뿐 아니라 현재까지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사이의 월경지로 남아있는 나히체반 지역 또한 분쟁지역이다. 골이 깊은 두 국가 간의 갈등은 얼마 전 있었던 중국과 인도 간의 무력 충돌과는 비할 수 없을 정도이다. 더 많은 사상자가 나기 전에 국제 사회의 개입과 공조로 전쟁이 종식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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