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준 편집국장

요즘 유튜브 알고리즘에 항상 나오는 ‘무야호’를 아는가? 정체 모를 감탄사 ‘무야호’는 옛 무한도전의 한 에피소드에서 나온 유행어이다. 미국 알래스카 한인회를 찾아간 무한도전 멤버들이 한국 교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유재석이 미국에서도 무한도전을 보냐는 질문을 던졌다. 한 할아버지는 무한도전을 잘 모른다고 했고, 화제의(?) 주인공 최규재 할아버지는 미국에서도 많이 본다고 답하였다. 그러자 노홍철은 ‘무한도전!’을 외쳐달라며 “무한~”이라 말을 건넸지만 사실 무한도전을 잘 몰랐던 최규재 할아버지는 정체불명의 “무야호~”를 외치고 큰 웃음을 선사해주었다.

 사실 두 할아버지 모두 무한도전을 잘 몰랐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의 사람들이 이역만리 타향에 찾아왔으니 어떻게든 환영해주려는 의도였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번 행주산성에서는 이처럼 사소한 부분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배려해주는 우리 민족의 따뜻한 마음씨를 다뤄보고자 한다.

 

그만큼 신나시는 거지

 무야호 해프닝은 어찌 보면 그냥 단순한 개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행주산성에서 무야호를 다루게 만든 것은 사실 무야호 이후 정형돈의 발언이다. “무야호~”라고 외친 후 할아버지들을 포함하여 멤버 모두가 어쩔 줄 몰라 웃는, ‘웃픈’ 상황이 이어졌다. 그 직후 정형돈은 “그만큼 신나시는 거지~”라며 멘트를 이어가서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전환했는데, 나는 이 발언도 무야호 못지않은 명대사라고 생각한다. 의도적이었든, 아니면 자연스레 나온 발언이든 결과적으로는 그 찰나의 순간에 할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고 서로 웃으며 넘어간 것이 아닌가?

 나는 이 짧은 영상을 보면서 영상에 나오는 모든 사람이 서로서로 배려하며 따뜻한 마음씨를 갖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냥 웃긴 영상일 뿐인데 의미부여가 과한 것이 아니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 사회,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이처럼 사소한 것에도 감동할 수 밖에 없다.

 각기 사례를 예시로 들지는 않겠다만, 요즘 에브리타임을 비롯한 각종 SNS를 중심으로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대면이 아니라는 이유로 서로를 험담하거나, 뒤에서 몰래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익명이라는 가면은 약자가 보복을 피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후폭풍과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엔 코로나

 어느 연구 결과에 따르면 면대면 의사소통과 비교하면 문자나 이메일로 주고받는 의사소통은 손실되는 정보량이 절반 이상이라고 한다. 이는 음성통화나 화상통화도 비슷하다. 목소리의 미묘한 억양과 표정, 제스쳐 등에서 전해지는 정보량이 생각보다 어마무시하다는 것이다. 똑같은 내용으로 놀리는 농담이라도 카톡 메시지로 받으면 기분이 나쁠 수 있지만, 얼굴을 마주 보고하면 서로 웃었던 경험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갈등 해결도 메시지로 하기보다는 직접 얼굴 보고할 때가 쉬웠을 것이다. 가끔 카톡으로 누군가와 싸울 때는 ‘이 사람은 대체 왜 이럴까?’라고 생각할 때가 잦다. 그런데 막상 만나보면 “아 그런 거였어? 말을 하지~”라며 쉽게 넘어갔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 또한 코로나19가 낳은 현상일 것이다. 면대면 접촉이 대부분 차단되고 비대면으로만 의사소통을 하다 보니 서로 간 마찰이 생기고, 얼굴을 붉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남과의 마찰이, 갈등이 있을 때는 반드시 얼굴을 보는 약속을 잡아라” 휴대폰으로 싸울 때는 상대방이 ‘사람’이 아닌, ‘화면 너머의 경쟁대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직접 얼굴을 보고 상대방의 의도를 헤아리고 서로의 처지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무야호~’의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다. 서로 그만큼 논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거지~’

저작권자 © 항공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