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30일 화요일에 306 보충대로 입소를 했다. 3박4일간의 장정생활을 마치고는 앞으로의 군생활에서 필요한 기초훈련을 받기위해 일산에 있는 신병교육대대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5주간의 훈련을 마친 후 9월 5일 수료를 하고, 다음 날 경기도 양주의 한 포병대대에 자대배치를 받았다. 그리고 600일이라는 시간이 흘러 2015년 4월 29일 수요일, 아무런 탈 없이 무사전역을 했다. 대부분의 장병들이 무사전역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장병들을 보면 가슴 한편이 아프다. 심심찮게 들려오는 훈련 중에 발생한 사건·사고들, 각종 의료사고들을 보면 나는 정말 여건이 좋은 부대에서 군복무를 했으며, 복 받은 사람이란 것을 새삼 느끼곤 한다.

2013년 11월 첫 휴가를 나와서 있었던 일이 기억이 난다. KTX를 타고 집에 도착해 가족들과 저녁을 먹을 때였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어머니께서 눈물을 흘리시기 시작했다. 정말 아차 싶었다. 이유인즉, 양쪽 팔과 허벅지에 멍과 상처가 있었던 것을 생각지 못하고 짧은 옷을 입고 식탁에 앉았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아버지와 형은 이제야 내가 군대를 간 것 같다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그 당시 나 또한 그러한 상처들이 나름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으로 기억난다. 마치 훈장인 양.

그 이후로도 역동적인 군 생활을 보내고 있을 무렵 2014년 윤 일병, 임 병장 사건을 기점으로 군대 내 폭력과 부조리가 급속도로 근절되기 시작했고, 선진 병영문화를 이루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행해지기 시작했다.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큰 사건들이 발생하고 군대의 문화가 변화하기 전까지 나는 부조리를 당하면 그냥 참고 넘기고, 또 나의 후임들이 그 밑의 후임들을 옳지 못한 방식으로 교육하던 모습들을 보면서도 왜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도 못했으며 그저 방관하기만 했던 것일까. 은연중에 도를 넘어선 부조리를 행했을지도 모르는 나에 대한 합리화와 더불어 나와 함께 힘든 생활을 했던 후임들에 대한 알량한 아량이었던 것일까. 나같이 폭력이나 부조리를 보고도 묵인하는 사람이야말로 폭력이나 부조리를 행하는 사람보다 못했으면 못했지 나은 사람은 아닌 것이다. 제한된 자유를 바탕으로 형성된 특수집단에서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쉬쉬하는’ 분위기 조성에 큰 몫을 한 장본인이 바로 나 같은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부끄러운 사실을 깨닫고 난 이후부터 사람이 많이 모이는 사적인 자리에서는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하게 되었다. 나 또한 가해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인 김수영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제목의 시에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라는 구절이 있다. 많은 현대인들이 공감할 만한 내용이다. 본인의 이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일에만 분개하고 남이야 어떻게 되든 본인에게 직접적 피해가 오지 않는 일에는 무신경한 나와 같은 현대인들이 이 시를 읽고 나와 함께 본인의 잘못된 태도를 고쳐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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