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공기가 신선하게 느껴질 때면, 가끔 나는 학생회관 식당 옆 야외 공연장에 설치된 나무 피크닉 테이블에서 그라찌에 커피를 즐기곤 한다. 때때로 운이 좋은 날이면 학생회관 3층 어디쯤에서 흘러나오는 재징유의 트럼펫이나 섹소폰 연주를 얻어 들을 수도 있다. 아마도 거기에 음악동아리 학생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연주 연습실이 있는 모양이다.

작년 초가을이었을 것이다. 토요일이었던가? 한가한 기분에 젖어 커피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항공대 학생이라고 여겨지는 청년 둘이 다가와 옆 테이블에 앉았다. 이내 한 청년이 바이올린을 꺼내 들더니 파헬벨 케논의 선율을 켜는 것이었다. 자연스레 나의 눈길이 자꾸 그리로 흘렀다. 아마도 다른 한 청년은 선배인 모양이다. 그는 바이올린을 켜는 청년에게 열정적인 목소리로 연주를 지도했다. 너무나 흥미로운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항공대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한참 그들의 연주와 연주지도를 들으며 커피를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나의 온 신경은 그들에게 쏠렸다. 그들의 정체가 하도 궁금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그 청년들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내가 항공대학교 교양학과 교수임을 밝히고, 무슨 일로 거기서 연주 연습을 하느냐고 물었다. 선배로 보이는 청년은 대답했다. 항공대 오케스트라를 만들려고 하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다. 클래식 연주를 할 수 있는 학생들을 모집하고 있다. 의외로 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많지만, 제대로 된 오케스트라를 만들기에는 역부족이다. 연습장소도 마땅치 않고 여러 가지로 여건도 좋지 않다.

음악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고, 때때로 학생들과 함께 음악을 즐기기도 하는 터라, 나는 곧 그들에게 친근감을 느꼈다. 그리고 좀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동아리방이라도 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동아리 등록을 하려면 3년의 예비활동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다른 학생들에게 들어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힘을 북돋는 몇 마디 말을 그들에게 건네는 것뿐이었다. 매순간을 열심히 살라고, 젊은 시절의 시간은 황금과 같다고, 무엇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모든 열정을 쏟으라고……. 그리고, 언제 내 연구실에 놀러 와서 함께 음악도 듣고 짜장면도 시켜 먹자고 다짐하고는 헤어졌다.

며칠이 지나고서, 그 선배 청년은 몇몇 후배들과 함께 내 연구실을 찾았다. 클래식 LP판을 들으면서 이런 저런 음악이야기를 나누었다.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삼호정에서 간짜장 곱빼기도 시켰다. 간짜장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인양, 그들은 그릇 바닥까지 드러내며 핥아댔다.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웠고,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다른 학생들에겐 미안하지만, 지금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 선배 청년뿐이다. 그는 항공우주기계공학과 4학년 조남욱이다. 그는 첼리스트다. 비행기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했다. 비행기를 만드는 첼리스트……. 어울리는 듯도 하고, 그렇지 않은 듯도 하다. 그는 꿈속에서 첼로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지 않을까?

KAUAO 창단 연주회 포스터

가끔 교정(校庭)에서 남욱이를 만나면,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곤 했다. 가을인가? 연주회를 한다고 와달라고 했다. 파헬벨의 캐논을 연주한다고 했다. 학교 일과 겹쳐서 갈 수 없었다. 몹시 안타까웠다. 그리고 올해 3월, 한국항공대학교 교내 오케스트라 KAUAO가 정식으로 창단한다는 연락을 해왔다. 강당에서 창단 연주회도 한다는 것이다. 아직 지도교수가 없어 누구든 본교 교수의 사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인을 해 주었다. 내게는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항공대에 오케스트라가 생긴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공연 날을 기다리며, 매일 연주회 레퍼토리 곡을 들었다. 연주회에 가기 전에 미리 들으면 연주회가 더 즐거워진다고 늘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2017년 3월 16일 목요일 오후 7시 전자관 강당, 드디어 연주회가 시작되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혼 협주곡 3번의 선율이 항공대학교 교정에 울려 퍼졌다. 30명에 가까운 연주자가 강당 무대를 메우고 연주를 시작했다. 관객도 마치 자신이 연주하는 양, 긴장된 표정으로 숨을 죽이며 진지하게 연주를 감상했다. 첫 곡이 끝나고, 모차르트의 교향곡 25번이 연주되었다. 영화 아마데우스의 주제곡이어서 많은 이의 귀에 낯익은 곡이다. 열기는 한층 고조되어 오케스트라는 열정적으로 마법의 선율을 자아냈다. 관객도 그 선율에 몸을 실었다. 마침내 연주가 끝났고, 객석에서 ‘부라보’, ‘앵콜’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앵콜 곡은 슈트라우스의 피치카토 폴카를 줄을 튕기며 연주했다. 이번에는 관객도 흥겹게 박수로 환호했다. 그날 나는 마치 기적의 마술을 보는 듯했다.

공연이 끝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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